진중권과 인터넷 글쓰기
진정한 토론을 위하여 토론이 정말 이성을 위주로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나와 다른 의견에 철저히 개방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핵심적인 문제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나"라는 에고를 어떻게 극복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진중권이 맞다. 트위터는 단문이기에 감정적이고 격할 수가 있다. 감정적인 "나"라는 에고가 강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라 "나"를 극복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사심없이 듣는 이성적인 토론을 깊게 할 수 있는 공간은 결코 못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진중권이 시사자키 정관용과의 인터뷰(팟캐스트로 다운가능)에서 그가 주장한 것은 인터넷시대는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했지만 트윗터 시대에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했고, 그래서 몇몇 사람들과 리트머스라는 인터넷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인터뷰에 나온 그가 한 말중 또 한가지 기억나는 것은 이렇게 인터넷상에서 디스커션을 해보면 사실상 합리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된다는 것이다. 토론을 하면 할수록 자신과 상대방의 제한된 세계가 드러나고 이 제한된 세계를 인정하고 부수고 새로운 의견이 도출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는 것은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무의식적인 심리적 기제 나도 한 때 깊이있는 지적인 토론에 대한 예찬자였다. 화려한 지적인 추상적인 문구들, 뛰어난 석학들의 말의 인용 가운데 이루어지는 현란한 말들의 오고감 이것에 매료되기도 했고, 이러한 언어를 사용해 토론하는 이들을 숭배했었고 이들을 카피하기까지 했었다. 아마 지금도 이 글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이 2급 카피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이비 지식인의 원죄인가?). 사실인즉 소위 지식인들의 세계에서는 일회용적인 단문 토론보다는 계속적인 장문토론이 소위 깊이 있고 객관적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인간의 나약한 심리인데 이러한 계속적인 토론의 과정에 있어 상대방과 나는 상처로 얼룩진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