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변화
1.
나의 변화는 결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 존재될 때 시작된다. 박약한 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내자신을 변명하고 합리화시켜 솔직해지지 못하는 것이 내 행동을 막는 것이다. 인생의 원칙은 스스로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할 때 세워지고 이 원칙으로 생각이 나오고 바로 이것이 의지이다. 원칙은 상대적인것을 넘어 절대적인 것에 가깝다. 그러나 이 한계에 대한 인식은 상대방과 비교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교하자마자 이것은 선입견으로 작용하기 때문. 우선적으로 버려야 될 선입견은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이 아니라 내자신에 대한 선입견이다.
2.
현대 심리학이 발견한 것중의 하나가 무의식이고 무의식이 의식차원에서 드러날때 치유든 무언엇이든 일어난 다는 것이다. 문제는 무의식이 드러나자마자 지식으로 끝임없이 합리화하는 작용이 시작된다는 것. 물론 무의식도 언어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 언어가 가리키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이것이 정신분석학의 한계이자 치명적인 단점이다. 차라리 “모른다"라는 의식을 가지고 Here and Now에 몰입하는 것이 우리의 건강한 사고와 마음을 가져오는 쎄라피가 아니가 생각든다. 현재 유행하는 명상이 여기에 촛점되어져 있다.
3.
문제해결이 “여기 지금”에 몰입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주장의 문제점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이로부터 도피로 이것을 이용하는 데 있다. 그래서 일단은 현재에 머무르며 에너지를 충만하게 하고 그다음 이 에너지로 다시 근본적인 문제를 살필 수 있다. 이것이 홍익학당의 명상법의 핵심이다. 그러나 문제를 살피는 사람은 끝임없이 자신의 문제를 그대로 보고 합리적 해결방안을 내놓기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이 문제를 합리화를 여전히 하는 경향이 있다.
4.
기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기 싫어한다.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더해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심리가 존재한다. 명상이란 이 겹겹이 쌓여있는 포장을 걷어내는 것이다. 이 걷어내는 작용은 저절로 되는데 우리는 계속해서 무엇인가 더하려한다. 명상을 목적을 고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명상을 못하는 것같다. 고요가 아니라 겹겹이 쌓여 있는 포장이 풀어지는 과정이다. 왜 힘든가? 우리는 이 풀어지는 과정속에 나오는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기 원하기 때문이다.
나의 변화는 결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 존재될 때 시작된다. 박약한 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내자신을 변명하고 합리화시켜 솔직해지지 못하는 것이 내 행동을 막는 것이다. 인생의 원칙은 스스로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할 때 세워지고 이 원칙으로 생각이 나오고 바로 이것이 의지이다. 원칙은 상대적인것을 넘어 절대적인 것에 가깝다. 그러나 이 한계에 대한 인식은 상대방과 비교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교하자마자 이것은 선입견으로 작용하기 때문. 우선적으로 버려야 될 선입견은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이 아니라 내자신에 대한 선입견이다.
2.
현대 심리학이 발견한 것중의 하나가 무의식이고 무의식이 의식차원에서 드러날때 치유든 무언엇이든 일어난 다는 것이다. 문제는 무의식이 드러나자마자 지식으로 끝임없이 합리화하는 작용이 시작된다는 것. 물론 무의식도 언어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 언어가 가리키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이것이 정신분석학의 한계이자 치명적인 단점이다. 차라리 “모른다"라는 의식을 가지고 Here and Now에 몰입하는 것이 우리의 건강한 사고와 마음을 가져오는 쎄라피가 아니가 생각든다. 현재 유행하는 명상이 여기에 촛점되어져 있다.
3.
문제해결이 “여기 지금”에 몰입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주장의 문제점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이로부터 도피로 이것을 이용하는 데 있다. 그래서 일단은 현재에 머무르며 에너지를 충만하게 하고 그다음 이 에너지로 다시 근본적인 문제를 살필 수 있다. 이것이 홍익학당의 명상법의 핵심이다. 그러나 문제를 살피는 사람은 끝임없이 자신의 문제를 그대로 보고 합리적 해결방안을 내놓기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이 문제를 합리화를 여전히 하는 경향이 있다.
4.
기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기 싫어한다.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더해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심리가 존재한다. 명상이란 이 겹겹이 쌓여있는 포장을 걷어내는 것이다. 이 걷어내는 작용은 저절로 되는데 우리는 계속해서 무엇인가 더하려한다. 명상을 목적을 고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명상을 못하는 것같다. 고요가 아니라 겹겹이 쌓여 있는 포장이 풀어지는 과정이다. 왜 힘든가? 우리는 이 풀어지는 과정속에 나오는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기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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